장난감 창고

피와인에서 좋아하는 디테일 중 하나는 게롤트가 디틀라프와 처음 격돌했던 그 창고가 장난감 창고(추정)였다는 점이다. 디틀라프와 장난감의 연관성만으로도 설레지만 피와인 전체를 관통하는 잃어버린 아이의 순수함이라는 테마와 엮어서 풀어봐도 좋은 장치였음.

 

보통의 장난감 창고도 아니고 지금은 비어있는 먼지뿐인 창고라는 점이 또 정말 좋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최종보스인 디틀라프와의 첫 싸움 필드라 방해받지 않고 싸울 수 있는 넓고 빈 공간이 필요했던 거겠지만, 텅 빈 장난감 창고라니. 곱씹을수록 좋아서 자꾸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진다. 빛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창고. 아직 판매되지 못한 장난감들, 혹은 길 잃은 순수가 머무르며 어두움과 절망과 외로움과 먼지만 모으는 장소... 그 곳에서야 디틀라프는 처음으로 게롤트에게 이를 드러내고 어둠 속에 녹아들어 싸운다.

 

디틀라프가 게롤트에게 손톱을 드러낸 그 시점에서는 이미 더께만 쌓여가던 장난감도, 순수함도 어디론가 사라진지 오래다. 목록에 있던 장난감들이 주인을 찾아 어느 따스한 가정집 어린아이의 친구가 되어주고 있을지, 팔리지 않아 창고 대여비만 까먹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가 소각 처리 되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확실한 건 이 창고에 더이상 장난감은 없다는 사실 뿐이다. 사과 한 알의 호의나 새치기를 응징하는 작은 정의에 감동받던 순수함이 이 시점의 디틀라프에겐 더이상 남아있지 않았던 것처럼.

 

사실 투생 돌아가는 꼴을 보면 창고를 떠난 장난감들이 좋은 결말을 맞았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안 든다. 장난감이 잘 팔렸으면 또 팔 물량을 주문해서 재고를 창고에 쌓아뒀겠지. 장난감 창고가 비어있던 건 어린 소년조차 길거리에서 영악하게 잔머리를 굴려 가며 구두닦이 일을 하게 만드는 잔혹한 현실 탓이리라. 아이들의 순수함을 지켜줄 어떤 마지노선, 장난감을 가지고 놀게 할 여유조차 없이 생계전선으로 몰아내버린 현실.

 

 

 

안티-뱀파이어 미신

좋아하는 디테일 중 또 한 가지는 (트친분이 알려주신 거지만) 보끌레흐 사태 때 온 사방에 널려있는 경비대원 시체마다 말뚝이나 거울, 성수, 마늘 같은 소지품이 한두개씩은 빠짐없이 들어있다는 점이다. 날벼락처럼 도시를 쓸어버리는 뱀파이어 떼의 습격에 맞서 목숨 걸고 싸우게 된 일반 경비대원들의 공포는 얼마나 컸을까. 미신에 의존해서라도 살고 싶은 그 절박함과 두려움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망치지 않고 칼을 들고 나섰던 그 용기 등이 눈앞을 스쳐지나간다.......

 

 

 

B&W

Blood and Wine,

Black and White,

the Beast and the Wit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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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ayu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