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레지스는 일종의 우울증에 걸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뱀파이어들이 인간과 같은 우울증에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레지스가 잠들기 전 쓴 일기를 한 문장 한 문장 뜯어보면 최소한 건강한 정신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얼마나 지쳐있는지 생각을 멈추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신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절대적인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고, 자신이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죄악시되는 욕망을 어렵게 토해내기도 하고. 제대로 잠들지도 못하는 상태에, 항상 '정말 피곤하니까 다 좆까'라고 말하고 싶었다는 말까지.
그 중에서도 동류들은 물론이고 인간들 사이에서조차 기쁨을 찾지 못한다는 말이 제일 마음에 걸린다. 레지스는 인간처럼 살기 위해 정말로 분투하고 있다. 400여년 살아온 이 뱀파이어는 아직까지도 제 존재의 위치와 삶의 방식을 찾지 못한 것이다. 한때 극도로 방탕하게 살았던 것도, 그래서 인간들에게 토막나 묻힌다는 끔찍한 경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인간들과 섞여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저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과 방황으로 인한 행동들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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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아닌 존재가 인간처럼 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매 순간 자신을 숨기고,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거짓을 가장해야 한다. 태생이 도플러가 아닌 다음에야 항상 피곤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피곤하고 지친 상태에선 자연스러움도 기쁨도 느끼기 어려운 게 당연하다.
레지스가 느끼는 끔찍한 피로는 장로루트에서의 이 비유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만약 네가 잠깐이라도 연기를 멈추고, 실밥에 쓸리는 곳을 잠깐 긁기라도 하면, 네 주변의 모두가 비명을 지르는 거야. "괴물이야! 괴물!" 그리고 모두가 등을 돌리고 널 조각내는 거지." 진짜 빌어먹게 피곤할 수밖에 없다. 정말로, 레지스는 큰 실수를 저지른 것 아닐까.
이 대사 중 '널 조각내는 거야' 라는 부분이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레지스가 실제로 겪었던 일을 그대로 서술한 것이라는 걸 생각하면 더 아득해진다. 인간들에게 살해당해 50년간 묻혀있던 경험은 레지스에게도 보통 끔찍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디틀라프의 도움으로 (겨우) 6년만에 재생성했던 죽음도 레지스는 '추위와 상상할 수 없는 공포', '얼음 같은 공포의 영원'이라 묘사한다. 그렇다면 50년간의, 그것도 곁에서 도와주는 친구의 손길조차 없는 어두운 땅 속에서 오롯이 홀로 겪었던 추위와 공포는 어땠을까. 모르긴 몰라도 레지스에게 그 후로 흡혈에 대한 결벽적인 경계심을 심어주기엔 충분했으리라.
그런 죽음과 공포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레지스가 그토록 인간들과 섞여 살기 위해 분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천구결합에 대한 대화에서 레지스는 그 이유를 꽤나 단순명료하게 언급한다. 인간이 바글대는 이 세계에 넘어온 한 줌의 괴물들에겐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고. 섞여 살거나, 숨어 살거나. 아무리 강한 존재라 해도 수의 논리 앞에는 굴복할 수밖에 없는 법이다. 이 세계는 인간들의 세계고, 레지스는 - 뱀파이어들은, 괴물들은 어디까지나 소수의 이방인일 뿐이다. 그것을깨닫고 다시 태어난 레지스는 피를 끊었다. 이 세계가 요구하는, 인간들이 요구하는 규율에 맞추어서.
사실 피의 광기가 문제가 된다면 충동을 절제해가며 조금만 마신다는 선택지도 있다. 하지만 레지스는 굳이 전면적인 금혈을 택했다. 멜라셰즈롱그에서 말했듯 중독 문제가 있긴 해도 마음만 먹는다면 시간을 들여서라도 피에 대한 욕구를 조절하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지스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겠다 한다. 일말의 가능성도 남기지 않기 위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언젠가 또다시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려들어 자길 토막내는 상황에 처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레지스의 무의식 깊은 곳에 자리잡은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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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과 자연스럽게 섞여 살기 위해서 레지스가 해야 했던 것은 금혈뿐만이 아니었다. 레지스가 그토록 우아하고 완벽하게 닐프가드식 인사를 할 줄 아는 것은 단지 그가 지식과 예법을 탐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인사를 비롯한 제국식 예법은 레지스에게 있어 닐프가드 사람들과 위화감 없이 섞여 살기 위해서 익혀야 했던 처세술이기도 했으리라.
그렇듯 레지스는 끊임없이 인간을 관찰한다. 인간들의 생활 양식을, 사회 분위기를, 인간이 가장 중시하는 가치를, 인간의 감정을, 생각을, 인간이 저지르는 바보같은 짓들을 관찰하고 분석한다. 그리고 체화한다. 그런 방식으로 레지스는 수많은 역할극을 해냈다. 약초꾼, 시골 의사, 이발사. 거듭해서 '정체'를 바꾸고 거처를 옮겨다니면서도 레지스는 매번 자신의 배역을 치밀하게 만들어냈고, 충실히 연기했다. 인간들을 그토록 관찰하고 연구한 덕에, 때로는 게롤트보다 능숙하게 사람의 마음을 꿰뚫고 다루어 원하는 바를 얻어내기도 한다. 구두닦이 소년에게 그러했듯이.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과정이 쉽고 편하기만 하진 않았을 것이다. 레지스는 계속해서 너희 인간들은, 너희 인간들과는 달리, 인간의 방식으로는, 우리가 보기엔... 등의 말을 사용하며 자신들과 인간의 사고방식을 비교한다. 인간들이 이상해 보인다거나, 인간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기도 한다. 인간의 방식을 행하고 있지만 그것을 이해하지는 못한 것이다.
그 근저에 깔린 원리,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을 이해하지 못한 이상 레지스가 인간을 가장하며 행한 모든 말과 행동은 그간의 관찰과 분석을 토대로 한 기계적인 암기의 되풀이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동화되기 위해 필요한 노력의 양은 얼마나 될까. 끔찍하게 소모적이고, 아득하게 피곤하고, 생각만 해도 진절머리가 날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지스는 매 순간 계속해서 아득바득, 있는 그대로가 아닌 다른 존재들 - 그것도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종족의 기준에 맞추어 그들이 원하는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정말로 '다 좆까버리고' 싶을 만큼 피곤해지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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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스는 천구결합 이후에 태어났다. 천구 너머의 세계-뱀파이어들이 기원한 원래의 세계를 모른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는 장로와는 달리 알지도 못하는 '고향'을 그리워하며 동굴에 틀어박힐 수 없다. 레지스의 고향은 이곳이고, 그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터전도 이곳이다. 실밥에 쓸리는 곳을 잠깐 긁기라도 하면 모두가 비명을 지르며 자신을 토막내러 달려오는 곳. 앞으로도 영원히 이 상황은 변하지 않을 것이며, 자신은 인간들이 원하는 모양새대로 스스로를 끊임없이 갈무리하고 점검하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에서 오는 무력감. 정말이지 우울증 오기 딱 좋지 않은가......
보끌레흐에서 하위 뱀파이어들, 레지스에겐 보다 동족에 가까울 그들을 죽여가며 인간들을 보호한다는 선택을 했던 것도 어느 정도는 이런 이유에서였다는 생각이 든다. 게롤트를 보내놓고 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을 살리겠다며 하위 뱀파이어들을 상대로 손톱 빼드는 레지스는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는데 정말 그 절박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휴머니스트라지만 일면식도 없는 그 많은 보끌레흐 사람들 하나하나의 목숨이 다 너무 귀하고 동족들의 목숨보다 소중하다고 생각해서 동족을 죽여가며 인간을 구했을 리는 없기에.
이 세계에서 살아가려면 그래서는 안된다는 생각, 인간들이 주인인 세계에서 살아가려면 인간들을 마구 죽여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너무나도 뿌리깊게 박혀있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했던 건 아닐까. 태어난 고향이지만 자신을 이방인, 괴물 취급하는 이 세계에서 살아갈 자리를, 존재의 평화를 너무나도 찾고 싶었던 나머지 그 사실에 강박적으로 사로잡혀버린 자의 필사적인 선택.
레지스가 게롤트를 소중한 친구로 여기고 편히 대하는 게 그래서 너무나도 애틋하다. 게롤트 역시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닌 채로, 인간들 틈에서 살아가며 괴물을 처리하지만 동시에 괴물 취급을 받는 존재니까. 잘 봐줘야 monster와 freak 그 사이 어드메일 뿐, 그 이상은 아니다. 그런데 게롤트는 그런 자기 처지에 대해 (램버트와는 달리) 그리 불평하진 않는다. 사람들이 자길 괴물이나 떠돌이 취급하는 것에는 익숙해졌다며 아무렇지 않아한다.
그 점을 생각하면 레지스가 게롤트 일행을 처음 만났을 때 호기심과 흥미를 느끼고 호의를 표했던 게 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던 것 같다. 자신은 400년간 동족들과 인간들 사이에서 자리를 찾기 위해 그렇게나 분투해왔는데 눈앞의 위쳐는 온갖 인간 비인간들과 함께 어울려 다니며 그걸 아무렇지 않아하니. 게롤트와 그 일행에 대해서, 나아가 그들의 인간과 삶에 대한 태도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 했던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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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인에서 레지스는 게롤트에게 위쳐의 삶에 만족하는지를 두 번이나 물어본다. 이 두 번의 질문은 피와인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플레이어를 위한 게임적인 연출로도, 레지스라는 캐릭터를 보여주는 대사로도 정말 좋은 한 수였기 때문이다.
위쳐3 본편과 DLC를 달리며 수많은 선택을 해 왔던 플레이어는 이 질문을 마주하고 그가 플레이한 게롤트가 어떤 게롤트였는지를 되돌아보게 된다. 꽤나 시적이고 함축적인 이 두 번의 질문은 시리즈의 막을 내리며 여운을 남기는 장치로 더할 나위가 없다. 동시에 그 질문은 레지스에게 가장 중요한 고뇌를 담고 있기도 하다. 위쳐로서의 삶에 만족하는가. 너는 네 삶의, 존재의 방식을 좋아하는가.
이 질문이 게롤트에게 단 한가지 질문을 허락받았을 때 신중하게 택한 것임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온다. 인간과 괴물의 경계에서 완전히 이쪽도 저쪽도 아닌 freak, 이방인, 외지인, 이질적 존재로 살아가는 게롤트. 그리고 비슷한 입장에서 계속 분투하고 고민중인 레지스가, 그에게 가장 궁금해 하는 것.
이 삶에 만족하는가, 삶의 방식을 택할 수 있었다면 같은 선택을 할 것인가... 아마도 레지스가 수백년간 자신에게 물어봤을 질문들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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